2017년 새해를 여는 치질 수술기

2016년 12월 28일 한달간의 한국행을 결심했다. 치질이 심해진 탓이다.

태국에서 두어 차례 진료를 시도했지만 의사는 이미 진정되어있는 치핵을 보고는 별 것 아니라며 살짝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주고는 700바트(약 24,000원)의 진료비를 받았다. 그러나 두번이나 이 같은 처방을 받았음에도 치질은 전과 다름없이 생활과 출사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줄 정도였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를 의심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수술을 문의 했는데, 의사는 여전히 무성의 하게 환부를 확인하며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고 싶으면 하라는 식의 제안을 했다.

수술비용을 의뢰하자 몇 몇 사람들이 가격견적을 들고 나타났다. 태국돈으로 8만바트,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대략 260만원에 달한다. 타인의 부탁이나 강매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호구였던 나는 두번도 생각지 않고 단번에 그들을 물렸다.

한국에 도착 한 후 인맥과 넷맥을 동원하여 몇가지 간단한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비용은 대략 30-50만원 선이며, 서울 약수동의 송도병원이 유명하다는 것.

그나마 치료받을 장소가 약수동 이라는 사실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의기 소침했던 내게 약간의 위안이 되어주었다. 내가 어릴 때 외할머니가 약수동에 사셨던 까닭에 어렸을 때부터 드나 들던 동네 였으며, 장충중학교를 졸업한 까닭에 이 지역은 나에게 꽤나 추억이 서린 동네이다.

물론 지금 내 부모님이 거주하고 있으며 내가 신세지고 있는 곳은 동두천이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이와 차가운 기계에게 사납게 뜯겨나갈 괄약근을 생각하면 그래도 장소라도 낯설지 않은 게 좋지 않겠는가……

약수동 송도병원은 명불허전이다. 원장 다음 짬이라 할 수 있는 부원장은 ‘신의’라 하겠다.

나이가 얼핏 오십대에 달해 보이는 그는 하루에도 수 명의 치질환자의 항문을 어루만지며 치료한 경력이 거의 이십여년은 족히 되어보이며 이 전에 상담한 의사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먼저 용변자세를 다각도로 촬영하여 질환의 심각성을 우선 파악하고 수술의 당위성을 설명하여 환자로 하여금 일말의 의혹도 들지 않고 수술에 임하도록 독려했다.

역시 그의 각진 턱은 신뢰감을 증폭시킨다.

물론 나는 촬영을 하자마자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부원장은 수술 후 최소 회복기간을 3주로 못박았으며, 설을 태국에서 지내려고 2주만에 돌아가려던 나를 만류했기 때문에 결국 한 달 이상 한국에 머무르게 되었다.

2주만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하자,그는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출혈이 아무는데 꽤 시간이 걸리며 대기압이 다를 수 있는 비행시에 출혈은 장을 타고 내부로 들어가 출혈여부를 확인 할 수 없어 사망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수술을 할지 안할지 결정하라고 했다.

사진 한답시고 몇 년 째 변변한 수입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내게 부원장 특진은 사치 일 수도 있겠으나 치질이 장기 출사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카메라나 렌즈에 투자하는 것 보다 더 가치있는 투자일 수 있다.

그렇다. 치질 수술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중국 베이징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겨울이 생각났다. 당시 중국의 어린 꼬마들은 두터운 옷을 입고 있음에도 엉덩이와 소중이 부분만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바지를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입고 있는 것이 꽤나 인상 깊었다.

그것은 괄약근의 힘이 아직 미약한 신체적 특성과 배변 예절에 관한 사회적 부끄러움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시기라 옷에 실례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치질 수술 후의 상태는 그 어린 꼬마들의 상태와 같다고 보면 되겠다. 수술 전 장세척은 물론 두어차례 관장을 하고 수술 후 일시적으로 괄약근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물론 정신적으로도 여러 의료진들의 이목아래 치욕적인 검사를 당한 직후라 더 이상 숨길 것도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엉덩이가 뚫린 옷을 입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니 마침 나의 수술동기라 할 수 있는 내 또래 아리따운 여성이 엘리베이터에 동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옷을 입고 멍한 눈으로 허공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에게 일말의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면서도 그저 마음을 비운듯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심전심.

척추마취 때문에 하반신에 아픔은 없었지만 수술의 감촉은 결코 좋지 않다. 엉덩이 뼈 위의 마취와 더불어 항문 주위를 몇 차례고 푹푹 찌르는 느낌, 양 쪽을 힘껏 벌려 고정하는 느낌, 아랫배 까지 통증이 느껴지는 기계의 느낌, 고기 타는 냄새, 그리고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수치, 무력감.

보험이 되는 다인실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실에는 꽤 많은 동지들이 있었는데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심적인 위안이 되는 듯 하다. 노소는 구분하지 않는 것 같으나 남녀는 구분하는 듯 남자환자들로 구성된 입원실이 었다.

입원실은 나누면서 수술실은 왜 나누지 않는 것일까, 조금 의아한 중에도 내 수술 동기는 수술이 잘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수년 전 어머니가 자궁 수술을 하며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돈 때문이었던것 같다. 당시 나는 수술의 경험 조차 없었기 떄문에 무통주사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도 못했고, 수술이 완전히 회복 된 후 들은 이야기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었다.

무통 주사는 수술 직후 거의 이틀 가까이 하는 엄청난 고통을 약 80%정도 경감시켜주는 마법의 옵션이다. 물론 나머지 20% 정도라고 해도 하루 정도는 견디기 힘들만큼 고통스럽다. 즉 마취가 풀리는 직후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는데 무통 주사가 없이는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새벽녁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소변을 볼 수 있었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첫 변을 볼 수 있었다. 옛날 중국 무술영화를 보면 고수의 한 초식을 얻어 맞은 상대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데, 그건 위나 내장에 심각한 내상을 입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수술은 심각한 내상을 입는것과 같기 때문에 항문 또한 하루 동안 엉긴 피를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항문 주위는 제대로 얻어터진 입술처럼 쓰라리고 얼얼했다.

이때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하면 고통을 재빠르게 경감시킬 수 있다.

3일간 송도병원은 자신들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 주고는 나를 퇴원시켰다. 퇴원 후 2일 정도 지나자 괄약근에 고통이 현저히 줄어들고 점차 외출이 가능했다.

동두천은 한국에서 가장 추운 동네이기도 하고 , 하필 수술을 받은 때는 올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울 때다. 퇴원 후 3-4일이 지나자 지하철을 타고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나, 먼 거리로 지인들을 만나러 갈 때는 혹시 동파라도 하지 않을지 꽤나 염려스러웠다.

고통은 2주가 지나자 거의 없어졌고 , 신의가 진료한 대로 3주가 되어서야 혈변도 그쳤다. 비행기를 타도 될 만큼 컨트롤도 좋아졌다. 수술 후  비데를 뿌리듯 한 후 휴지로 가볍게 쳐내주면 말끔해졌다. 예전과는 모양새가 조금 바뀐 듯 하지만 나쁘지 않았고, 위생면에서 더 낫게 느껴진다.

내가 성형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싶다.

어떤이는 수술을 하자 마자 탁구를 치러다녔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변비 때문에 한달 이상 상처가 찢어지고 아무는 무한 고통을 경험 했으며 , 어떤이는 배변 시 부엌 칼, 혹은 고슴도치가 , 나오는 고통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읽는 이로 하여금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큰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의사와 약사가 말한대로 매일 섬유소를 복용했고 , 무리한 운동을 삼가고 한달 간 집에서 푸욱 쉬었다. 변이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바로 변비약을 복용했으며,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변을 보면 좌욕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더운물로 샤워를 하고 탕욕을 했다.

몇가지 습관을 바꿔야 한다.

화장실에 책이나 랩탑, 폰을 가지고 들어가 혼자만의 사색을 가지는 시간을 없애고, 카타르시스를 극대화 하기 위해 무리한 힘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나친 육식 섭취를 지양하도록 하며 소화 자체에도 조금 신경을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수술은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오늘도 불철주야 항문의 건강을 주관하고 있는 송도병원 황 모 신의에게 감사의 말을 남긴다.

 

Written by SOMA

태국 방콕에 거주하는 다큐멘터리, 스트리트 사진가. 방콕까페 Swaygray Coffee 오너 겸 바리스타.

2 Comments

  • 치질 수술이 그렇게 큰 수술이었는지 몰랐는데 글을 보니 좌욕 한판 때리러 가야 되나 하는 마음에 숙연해집니다.

    • 수술의 크기를 넘어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부위에 칼을 대는 일입니다. 그리고 꽤 많은 비율의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질환이니 만큼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라 생각 합니다. 올 한 해도 차분한 마음으로 건강관리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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